가난한 시인부부의 젊은 시절 이야기
어느 날 아침, 남편은 세수를 하고 아침상을 기다리고 있었다.
그때, 시인의 아내가 쟁반에다 삵은 고구마 몇개를 담아 들고 들어왔다.
"햇고구마가 하도 맜있다고 아랫집에서 그러기에 우리도 좀 사왔어요.
맛이나 보세요."
남편은 본래 고구마를 좋아하지도 않는데다가 식전에 그런 겄을 먹는 게 뭔지
부담스럽게 느껴졌지만, 아내를 대접하는 뜻으로 그 중에서 제일 작은 놈을 하나 골라 먹었다.
그리고 쟁반 위에 함께 놓인 홍차도 들었다.
"하나면 정이 안 간데요. 한 개만 더 드셔요."
아내는 웃으면서 또 이렇게 권했다.
남편은 마지못해 또 한개를 집었다.
어느 새 밖에 나갈 시간이 가까워졌다.남편은,
"인제 나가 봐야겠소. 밥상을 들여요."
"지금 잡숫고 있잖아요. 이 고구마가 오늘 우리 아침밥이어요."
"뭐요?"
남편은 비로서 집에 쌀이 떨어진 줄을 알고, 무안하고 미안한 생각에 얼굴이 화끈했다.
"쌀이 없으면 없다고 왜 좀 미리 말을 못 하는 거요? 사내 봉변을 시켜도 유분수지."
뿌루퉁해서 한 마디 쏘아붙이자, 아내가 대답했다.
"저의 작은아버님이 장관이셔요. 어디를 가면 쌀 한가마가 없겠어요? 하지만
긴긴 인생에 이런 일도 있어야 늙어서 애깃거리가 되잖아요."
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아내 앞에, 남편은 묵연할 수밖에 없었다.
그러면서도 가슴속에서 형언 못 할 행복감이 밀물처럼 밀려 왔다.
김소운님의 수필 "가난한 날의 행복"