아름다운 글 550

주먹

주먹 나보다 부자인 친구에게 동정받아서 혹은 나보다 강한 친구에게 놀림당해서 울컥 화가 나 주먹을 휘둘렀을 때, 화나지 않는 또 하나의 마음이 죄인처럼 공손히 그 성난 마음 한편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미덥지 못함. 아아, 그 미덥지 못함. 하는 짓이 곤란한 주먹을 가지고, 너는 누구를 칠 것인가. 친구인가 너 자신인가, 그렇지 않으면 또 죄 없는 옆의 기둥인가. -이시카와 다쿠보쿠- (손순옥 옮김)

아름다운 글 2023.06.18

안개꽃 - 1

안개꽃 -1 꽃이라면 안개꽃이고 싶다 장미의 한 복판에서 부서지는 햇빛이기보다는 그 아름다움을 거드는 안개이고 싶다 나로 하여 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네 몫의 축복 뒤에서 나는 안개처럼 스러지는 다만 너의 배경이어도 좋다 마침내는 너로 하여 나조차 향기로울 수 있다면 어쩌다 한 끈으로 묶여 시드는 목숨을 그렇게 나에게 조금은 빚지고 싶다 복효근

아름다운 글 2023.06.16

꽃병과 사금파리 사이

꽃병과 사금파리 사이 꽃병을 옮기다가 깨뜨렸습니다 놓치는 순간 꽃병을 잡으려다 꽃병 사금파리에 내 손가락이 베어 피가 났습니다 섬뜩하는 순간 내 살이 갈라졌습니다 사금파리는 무서운 짐승이 되었습니다 그 예쁘고 사랑스럽던 도자기 꽃병이 살점을 도려낼 수 있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서슬 퍼런 복수의 칼날이 되었습니다 누구라도 찌를 수 있는 권력이 되었습니다 꽃병이 추락하는 순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꽃병과 사금파리 사이엔 "아차"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문재옥

아름다운 글 2023.06.10