꿈같은 이야기 꿈같은 이야기 내가 뭔가 말하면 모두가 바로웃으며 달려들어 "꿈같은 이야기는 하지 마" 해서 나조차도 그런가 싶어진다. 그래도 나는 포기할 수 없어서 그 꿈같은 이야기를 진심으로 꿈꾸려 한다 그런 터라 이제 친구들은 놀라지도 않는다 "또 그 이야기야!" 하는 투다 그런데도 꿈을 버리지 못해서 나 홀로 쩔쩔매고 있다. 김시종 아름다운 글 2023.09.13
비가 바람을 만나 비가 바람을 만나 비가 바람을 만나니 자작나무가 춤춘다. 어린 허리 낭창낭창 감출 줄 모른다.아직 어려서 세월을 좀 더 살아 허리 굵어진 소나무는 까닥도 하지 않는데 이끼 끼도록 산 나는 흠뻑 젖어 자작나무랑 마냥 즐겁다. 문혜영 아름다운 글 2023.09.08
무화과 숲 무화과 숲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녘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황인찬 아름다운 글 2023.09.04
장마 장마 내 머리칼에 젖은 비 어깨에서 허리께로 줄달음치는 비 맥없이 늘어진 손바닥에도 억수로 비가 내리지 않느냐, 비여 나를 사랑해 다오 저녁이라 하긴 어둠 이슥한 심야(深夜)라 하긴 무슨 빛 감도는 이 한밤의 골목 어귀를 온몸에 비를 맞으며 내가 가지 않느냐, 비여 나를 용서해 다오 천상병 아름다운 글 2023.07.10
주먹 주먹 나보다 부자인 친구에게 동정받아서 혹은 나보다 강한 친구에게 놀림당해서 울컥 화가 나 주먹을 휘둘렀을 때, 화나지 않는 또 하나의 마음이 죄인처럼 공손히 그 성난 마음 한편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미덥지 못함. 아아, 그 미덥지 못함. 하는 짓이 곤란한 주먹을 가지고, 너는 누구를 칠 것인가. 친구인가 너 자신인가, 그렇지 않으면 또 죄 없는 옆의 기둥인가. -이시카와 다쿠보쿠- (손순옥 옮김) 아름다운 글 2023.06.18
안개꽃 - 1 안개꽃 -1 꽃이라면 안개꽃이고 싶다 장미의 한 복판에서 부서지는 햇빛이기보다는 그 아름다움을 거드는 안개이고 싶다 나로 하여 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네 몫의 축복 뒤에서 나는 안개처럼 스러지는 다만 너의 배경이어도 좋다 마침내는 너로 하여 나조차 향기로울 수 있다면 어쩌다 한 끈으로 묶여 시드는 목숨을 그렇게 나에게 조금은 빚지고 싶다 복효근 아름다운 글 2023.06.16
꽃병과 사금파리 사이 꽃병과 사금파리 사이 꽃병을 옮기다가 깨뜨렸습니다 놓치는 순간 꽃병을 잡으려다 꽃병 사금파리에 내 손가락이 베어 피가 났습니다 섬뜩하는 순간 내 살이 갈라졌습니다 사금파리는 무서운 짐승이 되었습니다 그 예쁘고 사랑스럽던 도자기 꽃병이 살점을 도려낼 수 있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서슬 퍼런 복수의 칼날이 되었습니다 누구라도 찌를 수 있는 권력이 되었습니다 꽃병이 추락하는 순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꽃병과 사금파리 사이엔 "아차"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문재옥 아름다운 글 2023.06.10